본 글은 베블런 효과를 설명하는 글 입니다.
경제를 이야기할때, 빠지지 않는 것이 있습니다.
수요와 공급이죠.
이 수요와 공급은 거래를 하는데 있어서 가장 기본이 되는 것입니다.
수요가 있어야 공급이 있고, 또 공급이 있어야 수요가 있기 때문이죠.
가장 중요한 것은 수요와 공급 중 어느하나라도 막히면 세상은 마치 시간이 멈춘 듯, 동맥경화에 걸린 듯 뭔가 심각한 상황이 벌어지죠.
그런데 그럴일은 없습니다.
수요는 어떻게든 일어나고, 공급은 그 수요에 맞추어 어떻게든 될테니 말이죠.
멈추는 것보다 더 무서운 것이 있다.
바로 베블런 효과를 오늘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이죠.
미국의 저명한 사회학자 베블런(Thorstein Bunde Veblen)에 의해서 1899년 세상에 알려진 이 베블런 효과는 지금의 신문 지상과 사회 현상을 바라보면 딱 맞는 이야기가 아닐까 합니다.
"가격은 오르는데 수요가 줄어들지 않고 오히려 증가하는 현상" 바로 이것입니다.
베블런 효과란, 가격 상승이 발생함에도 불구하고 수요가 감소하는 것이 아닌 수요가 도리어 증가하는 경제 현상에 대한 이론 입니다.
가격이 오르면 일정 수준에서 수요는 줄어들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그 가격을 용납하는 것은 오히려 소비자로써 자신의 권리를 내놓는 바보같은 행위이기 때문이죠.
공급자에게 가장 이로운 것은 높은 가격이고, 수요자에게 가장 이로운 것은 높은 품질에 낮은 가격이죠.
거래가 이루어지기 전 두 사람이 가진 것은 상품과 돈이라는 가장 근원적 거래 매개체를 가지고 시작하기 때문이죠.
가격이 오르는데도 수요는 줄어들기 보다 오히려 증가한다고 하니...
멈추기라도 하면 다시 이어져 갈텐데... 상상하기 힘든 일이 벌어지기도 합니다.
가격이 오르면서 숨이 가쁘지 않는다면, 달리기를 생각해봐야
베블런 효과는 일종의 과시욕과 허영심, 이 두가지 키워드의 단상을 사회적 경제 현상을 설명하는 것입니다.
자신을 과시하기 위한 용도로 오르는 가격을 흥쾌히 받아들이고 시장에서 아니, 자신을 제외한 모든 사람에게 가짜 칭송을 받으며 행복해 하고 또 이를 보고 제2차, 제3차 피해자가 늘어나는 것과 같습니다.
그러나 결국 어느선에서 끝나느냐...
바로, 구매자 스스로가 높은 가격이라는 것을 스스로 자명하고 자신들이 구매한 가격보다 터무니 없이 낮은 가격에 내 놓는 순간 그 레이스는 끝나게 됩니다.
가격이 오르면서 이정도는 괜찮아... 라고 생각하는 순간이 바로 베블런 효과의 시작이 될 수도 있습니다.
물론, 고소득층, 부유층이 아니라도 말이죠.
달리기를 할때 처음부터 너무 빨리 달리면 힘들다는 것을 직감합니다.
그러나, 천천히 달리다 일정한 속도로 올라가는 것이 아닌 점점 더 가속도를 높이게 되면 숨이 금세 가빠오르게 됩니다.
그러면서 어느순간 쉬고 싶어지고 하지만 지금 달리기를 멈추면 실패자라는 생각에 결국 죽지 않는 선에서 그 달리기는 끝나게 됩니다.
경기를 마치고 후회를 하죠..
"내가 왜 그랬을까...", "이 영광은 오래가는 것일까..."
결국 베블런 효과에서 이야기하는 것은 우리의 소비 습관과도 직결 시킬 수 있습니다.
바로 지금의 상황에서 말이죠.
가격은 오릅니다. 그러나 시장은 그것을 너무나도 쉽게 받아들이고, 또 그것을 당연한 것으로 여깁니다.
특히, 저가격대를 형성하는 제품 중 극도로 마진율을 높이게 되더라도 소비자들은 그래도 받아들입니다.
왜냐하면 주머니에 돈이 있으니까요.
원래 이윤을 포함하여 1500원하는 커피가 있다고 합시다.
이 커피에 무려 300%에 해당하는 가격을 이윤으로 책정을 하고 가격을 올려버려 6000원으로 했다고 합시다.
뭐, 6000원이 너무 비싸니 200원 깎아서 5800원이라고 합시다.
그런데 까짓거 5000원 쯤이야.. 하는 생각에 커피를 사먹게 됩니다.
6000원인데도 말이죠.
만약 집이 1억이라고 합시다.
그런데 여기에 300%의 이윤을 붙여 4억이라고 합시다.
그래도 삽니다.
왜냐하면, 부의 상징으로 여겨졌으니까요.
그러다 결국 단하나.. 이자 올리니 시장이 죽을 듯이 숨을 못쉬고 있습니다.
그만큼 빌려서 투기를 염두해 집산 구매자들의 허영심과 과시욕이 이렇게 고가에서도 나오게 되는 것이죠.
가격이 지속적으로 오르는데도 시장에 속한 구성원들은 그것을 제어하지를 못하게 됩니다.
그러면서 죽겠다고 아우성을 치는 것이죠.
참 아이러니 한것이 아닌가 합니다.
추종하는 사람이 더 큰 문제입니다. 뱁새 vs 황새의 숨막히는 레이스!
사회에서는 일종의 모방심리, 소비 바이러스와 같은 것들이 누군가를 끊임없이 동경하게 합니다.
자신의 소득이 개선되면 될 수록 더욱더 많은 부가 축척되는 것이 아닌, 누군가를 동경하기에 끊임없이 따라하기를 하게 됩니다.
곰곰히 생각해 보면, 뱁새가 뱁새는 뱁새 나름대로의 장점과 인생의 선물이 있지만, 황새의 보폭을 따라하기에 바빠 인내의 세월을 보내는 것이 아닌 가랭이찢기 연습을 하는 것과 같습니다.
아예 다른 레이스에 있습니다.
엄연히 다른 레이스에 있으며, 황새의 레이스가 절대로 멋지고 아름다울 이유는 절대로 없습니다.
단지 눈에 보이기에 화려할 뿐이고 뭔가 있어 보일뿐 절대로 우월할 수는 없는 것이죠.
그럼에도 뱁새는 황새 레이스에 참여하여 결국 가랭이가 찢기게 됩니다.
그러나 황새들은 그들의 레이스를 그냥 즐길 뿐이죠.
비참한 뱁새는 결국 어디로 갈까요? 갈곳이 없습니다.
오히려 뱁새는 뱁새의 레이스에서 다시 다른 새로 탈바꿈할 때까지 인고의 과정, 인내의 과정을 거친다면 분명 이야기는 달라질 것입니다. 그러나, 단지 달리기만 따라하는 것은 뱁새의 생명을 단축시키는 것에 지나지 않죠.
이렇듯, 추종하는 세력, 모방심리에 이끌려 자신도 모르게 착각속에서 끊임없이 소비 레이스를 따라가는 사람은 결국 시장에서 퇴출 1호가 됩니다.
그러면서 정말 갑작스러운 경제적 상황으로 인해서 심각한 고민을하는 분들까지도 이들은 막아서게 되는 것이죠.
그러나 중요한 것은 이런 사람들은 시장에서도 결국 외면받게 됩니다.
그나마 돈을 제일 잘 빌려주는 카드사에서도 이런 사람들은 나중에 오히려 고객이 아닌 자신들의 수익에 누수가 되는 적이 되어버리니 좋아할리가 없죠.
소비는 절대로 과시욕과 허영심으로 시작해서는 안된다는 점입니다.
멋쟁이는 가만히 있어도 멋쟁이입니다.
이것이 바로 본질에 대한 이야기죠.
과시욕과 허영심을 부린다는 것은 뭔가 스스로에게 부족함을 느낄때 비로소 가지게 되는 것입니다.
소비는 절대로 이러한 과시욕과 허영심의 수단으로 사용해서는 안되는 중요한 것입니다.
비굴하게 남에게 손벌릴 처지까지 안가더라도 과시욕과 허영심은 소비를 통해서 절대로 채워질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죠.
고가의 상품을 쉽게 구매하고 쉽게 환불이나 교환하는 분들 역시 과시욕과 허영심을 좌시할 수는 없습니다.
스스로가 고장난 스위치 처럼 왔다갔다 할뿐이니까요.
그리고, 누군가에게 소비를 보이기 위해 소비를 하는 분들 역시 매우 위험한 상황입니다.
비록 지금 돈이 숨막힐 정도로 많을 지라도 말입니다.
베블런효과에서는 상류층들의 소비 행태를 꼬집었습니다.
그러나, 지금의 다양한 상품과 다양한 소비 계층은 어느 상품에서라도 어느 소비 계층에서라도 이 베블런 효과는 일어날 수 있게 된다는 점이 아닐까 합니다.
세상에서 가장 바보같은 행위는 "돈 앞에서 호기 부리기"가 아닐까 합니다.
혹여나 당신이 소비할 능력이 있다는 것 때문에 누군가로 부터 가짜던 진짜던 호의적인 대접을 받는다면 그것은 당신이 소비하였기 때문이 아닌, 소비할 능력을 가졌기 때문이죠.
즉, 당신이 쥔 돈 때문이라는 것 입니다.
현명한 소비를 할 줄 아는 사람, 시장의 가격의 정상 유무를 직감할 수 있는 소비 감각.
그것이 이 시대에, 지금과 같은 시기에 가장 절실히 필요한 것이 아닐까 합니다.